협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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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 천안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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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배경

천안시음악협회가 결성되기까지의 전신은 1970년대 ‘오월회(吾月會)’로서 음악애호가이던 이을경(이안과의원)을 비롯하여 서양화가 김선재, 동양화가 김화경, 음악인 한상학, 초대 지부장 강명구,
3대 지부장 박문호, 무용계 허명자 등 10여 명 내외의 예술인들이 ‘오월회’란 모임을 만들어 다방에서 음악감상회, 이안과의원에서 싸롱음악회, 문화원에서 미술작품 전시회 등을 통하여 천안의 예술혼을
불지피기 시작한 것이 그 불씨였다.

그러나, 불행하게 그 중 4명이 50세 전후에 타계하여 비통의 슬픔 속에 예술혼의 명맥이 끊어져 10여년 동안은 암흑시대였다. 그 후 4∼5대 안수영지부장의 발의와 추진으로 3대 지부장 박문호, 유봉환,
김진차, 이봉조, 이학자, 이영용 등이 이구동성으로 천안음악협회의 창립을 거론하게 되어 1983년 9월 1일자로 인준을 받았다.

초대 지부장에 강명구 회장이 의욕적으로 첫발을 내딛고, 천안시음악협회의 초석을 튼튼히 다지게 되었으며, 창립기념 첫 행사로 대우합창단 초청공연을 제일감리교회에서 개최하여 3천명 이상의 관객이 몰려
500명 환불소동까지 일어나는 등 천안시민의 음악애호의 열기를 실감케하였다. 그 후 음악의 전당이 될 천안시민회관이 건립되어 명실공히 천안시음악협회의 보금자리로 그 나래를 활짝 펼 수 있었다.
제1회 충남학생음악경연대회, 유명성악가 초청연주회, 회원음악회의 활동에 불을 당기게 되었고, 수준높은 음악감상을 통하여 영혼을 맑고 아름답게 하는 음악애호의 분위기와 음악환경을 개선하는 시대였다.

천안시음악협회의 발전기는 제3대 박문호 지부장의 취임 때부터라고 본다. 초창기 멤버인 박문호 지부장은 연중 행사의 폭을 넓혀서 초청연주회 및 경연대회, 독주회, 천안삼거리 음악제, 합창제, 가곡과 아리아의
밤을 비롯하여 국제적인 음악가를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천안시민들의 음악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운영상 곤란했지만 박문호 지부장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천안시음악협회의 운영은 매우 안정되고
발전된 것이다. 특히 청소년을 위한 국악교실을 통하여 우리 가락과 정서의 뿌리를 되찾고, 민족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충남순회 가곡의 밤을 통하여 천안과 대전 그리고 충남 일대의 음악의 횃불을
치켜들게 되었다.

초대·2대 강명구 지부장과 3대 박문호 지부장의 밀알역할로 초석시대라고 할만큼 그 기초를 튼튼히 하였고, 천안시음악협회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안 음악예술의 센터가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혜성처럼 떠오른 젊고 추진력 있는 안수영이 제4대 지부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소년 국악교실의 운영을 획기적으로 운영하여 성공시켰으며, 제3회 부터 제8회에 이르는 청소년
국악교실을 통해 수료한 학생은 26,500명으로서 청소년의 음악환경을 조성하는 터전이 되었다. 또한 충남 음악교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충남교사 관악합주단을 초청하였고, 회원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고
음악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정기적인 음악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국제적인 음악가와 국내의 유명한 음악가를 초청하여 음악세계의 신묘함을 맛보게 하였고, 국내외의 유명한 오페라단을 초청하여 천안의 음악수준을
국제적인 음악 도시로 발돋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음악수준을 한 차원 높일 뿐만 아니라 각 음악대학과 연계하여 음악축제를 가졌기에 천안하면 충청남도에서 음악의 수부도시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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